마음을 풍요롭게..

백마고지역(2)

마음자리와 저녁노을 2024. 3. 20. 23:19
  전쟁이 끝나갈 무렵 백마고지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야말로 황폐한 땅이 되어 버렸다.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 '마치 백마가 드러누운 모습 같다'고 해서 한 미군병사가 'white horse hill'이라 부른 것이 유래가 됐다.
백마산은 원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의 ‘대마리 뒷산’으로 불리던 무명 산이었다. 이름이 붙게 된 것은 6·25전쟁과 관련이 있다. 6·25전쟁의 작전 기간 중 포격으로 수목이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 온다. 또한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의 질문에 백마산을 가리켜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한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전투 중 9사단을 방문 격려한 이승만 대통령이 임경업 장군의 ‘백마산성’에 빗대어 백마산으로 명명하였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이 중에 산의 형상이 백마가 누워 있는 모양 같다 하여 백마고지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군 보병 제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를 계기로 유명해졌으며, 부대 명칭도 백마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철원지역은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위치, 즉 동서·남북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중부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추었다. 넓은 평야, 임진강 수로에 의한 서해안 접근, 고개 넘어 북한강에 의한 중부 내륙이나 동남부와의 연결성 등은 중앙집권적 왕조 건설에 불리하지 않았다. 출처 <국토정보플랫폼;한국지리지> 
  궁예의 태봉국(AD911~918)건설은 강원도에서 이루어진 능동적 역사 사건이다. 궁예의 태봉국은 통일신라 이후 후삼국 시대에 일어난 사건으로 철원에 수도를 정하려는 시도였다. 신라 왕족 출신으로 일컬어지는 궁예가 원주에서 세력을 결집시켜 강릉의 후원을 받아 인제, 양구를 거쳐 송악에서 왕이 된 다음 철원 천도를 시도한 사건은 주목된다.
강원의 역사 속에 가장 창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궁예의 태봉국 수도는 접경지역과 비무장지대에 속하여 오늘날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A.D 905년 궁예가 송악에서 철원평야의 풍천원으로 옮겨 조성한 궁예 도성은 통일시대를 맞이하는 이 때 강원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인 공간으로 재생될 필요가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엔 참여하의 DMZ평화공원이 철원 부근에 건설된다면 남북 통일의 창조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국토정보플랫폼;한국지리지>
 
  국토정보플랫폼, 한국지리지에 실린 철원지역 관련 내용이다. 후삼국의 태봉은 철원을 수도로 정한다. 짧은 수명으로 실패로 끝났기에 더 아쉬웠을 철원의 역사는 한국전쟁에서 또 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그 처참하였던 전장의 흔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길은 매끈하고 날렵하게 포장되어 있으며 길옆으로 펼쳐진 벌판은 가을의 황금빛을 토해내고 있다. 이름모를 나무는 산을 덮은지 이미 오래이고 이제는 백마고지역이 종착역이 되어 분단의 아픔을 안은 금강산 철도는, 자동차 도로와 나란히 하여 가까이 다가오다 혹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달린다. 가을을 알리는 개울가 코스모스는 맑은 물에 비취진 일그러진 제 모습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까. 길 양옆에 철벽 기둥같이, 괴물처럼 마주보고 서있는 기괴한 대전차 방호벽은 이곳이 전방지역임을 알려준다.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 옆 숲가에는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듯이 가시철조망이  둘러쳐지고, 끝이 뾰족한 역삼각형의 붉은 천(또는 노란 천)이 조금도 흔들림없이 팽팽하게 매달려 있다. 우리는 그곳을 우리는 지뢰밭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밭은 순수 우리말이며 漢字표기로는 田으로 쓴다. 밭은 농사를 짓기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땅을 말한다. 수도작하는 논은 별도로 畓으로 票記하고 있는데, 畓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漢字라고 한다. 밭은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이땅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면면히 어어 온 삶의 터전이고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곳이다. 이곳 밭에는 무서운 지뢰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어는 시인은 지뢰에도 꽃이 핀다고 이름을 '지뢰꽃'이라 부르고 화약 냄새의 향기가 풍길 것 같다고  한다. 그것도 지천으로 흔하단다. 이제 백마고지역 지나 대마리 사거리다. 월하리는 좀 더 간다. 이곳 출신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 은 그래서 이땅의 민초들에게는 아픔이다.
 
*지뢰꽃*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휴전 이후 70 여년이 지나가는 지금, 우리는 대마리 지나 월하리로 간다. 길옆 풀속에는 여전히 지뢰밭이 터줏대감 마냥 자리잡고, 지나는 이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언젠가는 회복해야 할 땅, 땀과 삶이 공존하던 옛 터전은 말이 없다. 차창밖으로 다가오는 방호벽과 우중충한 모습으로 서있는 옛 노동당사는 가을빛조차 비켜가고 두근 두근 탑(?)의 숫자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무상하다. 
 
※ (참고로 벼는 식물학적으로 벼과(科)의 벼속(屬)에 들어가는 2개 종(種)이 있다. 그 하나는 히말라야산맥 남방의 산록에서 발생한 것으로 학명을 Oryza sativa L.라고 하며,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의 나일 강 상류 델타지대에서 발생한 것으로 학명을 Oryza glaberrima L.라고 한다.)
※두근 두근 조형작품(김현선);높이 6.8m의  사람형상 조형물. 분단 현실의 슬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의 형상임. 심장을 표현한 가슴의 하트 모양은 통일의 두근 거림을 나타낸다. 세로로 내려오는 미디어 보드의 숫자는 광복부터 초단위로 계속 카운트되고 있다.(실제로 계산해 본 1인)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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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 두근

백마고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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